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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현금인출기와
방사성 전표

1967 혁신과 기술 읽기 4분

1967년 6월 27일, 런던 북부 엔필드의 바클레이스 지점에서 벨벳 장막이 걷히고 창구 직원 없이 지폐를 내주는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계에게 자신을 알리려면, 고객은 탄소 14를 입힌 종이 전표를 내놓아야 했다.

사실

초콜릿 자동판매기에서 온 기계

존 셰퍼드배런은 영국의 지폐 인쇄사 데라루(De La Rue)를 이끌고 있었는데, 어느 토요일 아침 은행에 너무 늦게 닿았다. 그는 뒷날, 욕조 안에서 초콜릿 자동판매기를 떠올리며 해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바클레이스는 며칠 만에 받아들였다. 먼저 여섯 대, 이어 쉰 대였다. 첫 기계는 1967년 6월 27일 엔필드에서 은행 부회장 토머스 블랜드 경이 벨벳 장막을 걷으며 공개했고, 그 동네에 살던 희극배우 레그 바니가 첫 인출을 했다.

이 기계는 카드를 읽지 않았다. 고객은 은행에서 미리 받아 둔, 탄소 14라는 약한 방사성 표지를 입힌 종이 전표를 서랍에 밀어 넣었다. 기계는 그 표지를 감지했다. 그다음 고객이 네 자리 숫자를 눌렀다. 전표는 기계 안에 남았고, 기계는 최대 10파운드를 내주었다. 당시 지점은 오후 3시 30분에 닫았다. 무엇보다 먼저 풀린 것은 바로 그 제약이었다.

다만 그 공로는 나뉜다. 글래스고의 기술자 제임스 굿펠로는 1966년 5월 2일에 이미 출원을 냈고, 그것이 1967년 7월 25일에 등록된 영국 특허 제1,197,183호가 되었다.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카드와, 소지자만 아는 번호를 짝지은 것이다. 처브(Chubb)가 만든 그의 기계는 같은 해 웨스트민스터 은행에 설치되었다. 최초의 기계와, 카드에 실린 최초의 비밀번호는 아버지가 서로 다르다.

네 자리라는 길이는 기술과 무관하다. 군 복무를 마친 셰퍼드배런은 처음에 자기 군번의 길이인 여섯 자리를 생각했다. 아내 캐롤라인이 네 자리 넘게는 결코 외우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 뒤 반세기 동안의 세계 표준이 그 집안의 대화에 걸려 있었다.

1967년, 최초의 현금인출기와 방사성 전표
그것이 드러내는 것

지점이 정말로 나눠 주던 것

1967년의 은행 지점은 성격이 사뭇 다른 두 가지 일을 했다. 계좌를 관리하는 일과 현금을 내주는 일이다. 뒤의 일에는 창구 직원과 영업시간과 줄서기가 들었다. 기계는 그것을 나머지에서 떼어냈고, 무엇보다 그 비용 구조를 뒤집었다. 창구는 거래마다 비용이 들지만, 기계는 한 번 들고 그다음에는 거의 들지 않는다. 가변비용이 고정비용으로 바뀐 것이다.

그 뒤의 일은 보기만큼 뻔하지 않았다. 인출에 드는 시간을 없앴더니 거래 건수는 줄기는커녕 몇 배로 늘었다. 게다가 기계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 대의 기계가 모두에게 쓰이려면 은행들 사이의 상호접속 합의가 있어야 했고, 따라서 어느 은행의 소유도 아닌 공용 기반이 필요했다. 현금을 내주는 일은 그렇게 조용한 공공재가 되었고, 그 비용은 그것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논의된다.

은행 지점이 무엇보다 먼저 나눠 주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까지, 벽에 박힌 기계 한 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