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달력

신뢰를 되살린
민간 은행

1800 은행과 제도 읽기 3분

1800년 1월 18일, 브뤼메르 쿠데타로부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프랑스 은행이 태어난다. 세운 이는 국가가 아니라 은행가들이었다. 아시냐가 무너진 뒤, 제1통령은 지폐에 대한 신뢰가 명령으로 생기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사실

제1통령의 후원 아래 선 은행가들의 회사

혁명을 막 벗어난 프랑스에서 지폐는 공적 신용을 무너뜨린 뒤였다. 남발된 아시냐는 1796년 폐기되기 전에 이미 가치가 곤두박질쳤고, 국가가 찍는 지폐를 원하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보나파르트는 직접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상인과 은행가들이 세우는 민간 기관의 설립을 뒷받침했으며, 그 가운데에는 페레고와 르쿠퇼 드 캉틀뢰가 있었다.

프랑스 은행은 주식회사였다. 상업어음을 할인해 주는 대가로, 소지인에게 일람불로 지급되는 은행권을 발행했고, 곧이어 당좌계정금고(Caisse des comptes courants)를 흡수했다. 500프랑과 1,000프랑짜리 첫 은행권은 1800년 6월과 7월에 나왔는데, 액면이 높아 주로 상인들이 썼다. 보나파르트 자신도 주주 장부에 30주로 이름을 올렸다.

작동 원리는 어음 할인이라는 단 하나의 거래로 요약된다. 몇 달 뒤 지급될 환어음을 가진 상인이 그것을 은행에 넘기면, 은행은 이자를 뗀 금액만큼의 은행권을 곧바로 내준다. 은행권은 정부의 서명이 아니라 실제 거래에 기대는 셈이다.

1803년 은행은 파리에서의 독점 발행 특권을 얻었다. 최대 주주 200명이 총회를 이루고, 총회가 이사 15명을 뽑았다. 그러나 1805년의 위기는 이 독립성이 취약함을 드러냈다. 정관이 개정되어 국가 원수가 임명하는 총재 한 명과 부총재 두 명이 은행을 이끌게 되었다. 1848년에는 전국에 걸친 발행 독점권을 받았고, 지방 은행들은 그 지점이 되었다.

1800년, 신뢰를 되살린 민간 은행
그것이 드러내는 것

발행자만큼만 값하는 종이

이 사건은 은행권이 그 자체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은행권은 발행자에게 주어진 신뢰만큼 값한다. 1800년의 은행은 그 신뢰를 포고령으로 얻지 않았다. 이름 있는 은행가들, 선별적인 어음 할인, 처음에는 판단할 줄 아는 이들에게만 열린 종이에서 신뢰를 빌려 왔다.

그러나 이 타협은 끝내 닫히지 않은 긴장을 그려 냈다. 권력에 너무 가까우면 발행자는 신뢰를 잃고, 너무 멀면 그것을 원한 이들의 손을 벗어난다. 두 세기가 지난 지금, 중앙은행 독립성을 둘러싼 논쟁이 같은 물음을 되풀이한다. 사람들이 믿으려면 화폐는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가?

은행권이 국가의 말일 뿐이기를 그친 뒤에야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