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에
칩을 넣은 특허
1974년 3월 25일, 스물아홉 살의 발명가가 비밀을 간직했다가 암호를 아는 사람에게만 내주는 휴대용 물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롤랑 모레노는 상업이 쓸모를 찾기 훨씬 전에 스마트카드를 발명한 것이다.
먼저 반지, 그다음 카드
1945년 카이로에서 태어난 롤랑 모레노는 노래하는 기계 새와 휴대용 전기 피아노를 만든 재주꾼이었다. 1971년 인텔이 프로그래밍과 삭제가 가능한 메모리인 EPROM을 내놓자 그는 한 가지 착상을 얻었다. 데이터를 간직하고 있다가 암호가 입력된 뒤에야 내놓는 개인용 물건이었다. 1974년 3월 25일 그의 회사 이노바트론(Innovatron)은 이렇게 보호되는 메모리를 판독기로 읽는 방식의 특허를 출원했다. 1975년 5월 13일의 두 번째 특허는 이어진 마흔세 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독립된 휴대용 물건에 기밀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방법을 기술했다.
첫 시제품은 반지였다. 귀족의 인장에서 착상을 얻은 모레노는 칩을 반지에 납땜하고, 그 핀을 소켓에 눌러 넣어 문서에 「봉인」하게 했다. 쓰기에는 불편했지만 1976년의 시연은 성공했다. 이어 그는 칩을 카드에 붙여 판독기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바꾸고, 우디 앨런의 영화 Take the Money and Run에서 따 TMR이라 이름 붙였다.
시장이 열리기까지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1983년 초 프랑스 텔레콤은 카드식 공중전화를 설치했고, 첫 물량 25만 장의 전화 카드는 금세 팔려 나갔다. 1990년대 초에는 1970년대부터 쓰이던 카르트 블뢰(Carte Bleue)에도 칩이 들어갔다. 머니복스(Moneyvox)에 따르면 프랑스는 결제 카드에 칩을 보편화한 첫 나라다. 모레노는 2012년 숨질 때까지 특허와 이노바트론으로 약 1억 5,000만 유로를 벌어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물건 속에 깃든 신뢰
마그네틱 띠는 읽고 복사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저장할 뿐이다. 칩에는 올바른 암호에만 응답하는 작은 연산 장치가 들어 있어, 검증의 일부가 네트워크에서 카드로 옮겨 간다. 머니복스가 전하는 2023년 상반기 수치가 그 정도를 보여 준다. 칩을 쓴 대면 결제의 사기율은 금액 기준 0.011%, 곧 10만 유로당 11유로이고, 인터넷 결제는 0.153%다.
이 이야기는 발명의 가치가 출원 날짜보다 그것을 기다리는 기반 시설이 갖춰지는 때에 달려 있음을 일깨운다. 1974년의 특허와 첫 전화 카드 사이에는 9년이 놓여 있고, 칩이 국제 표준이 되려면 1998년에 채택된 EMV 규격이 다시 필요했다. 이 궤적은 오늘의 논쟁, 곧 휴대전화 결제에서 디지털 신분증에 이르는 문제를 비춘다. 신뢰는 네트워크에, 제도에, 아니면 몸에 지니는 물건에 깃들어야 하는가?
특허는 세상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까지 거의 1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