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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화폐가 되던 때

1945 진기한 이야기 읽기 3분

1945년, 한 영국 경제학자가 포로수용소 연구를 발표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임금을 받지 않았지만 모두가 거래했다. 이 작은 세계의 기준은 주머니 속에 있었다. 담배였다.

사실

포고령 없이 태어난 화폐

1942년 리비아에서 포로가 된 R. A. 래드퍼드는 전쟁의 나머지 시간을 독일 수용소에서 보냈다. 그는 이론이 보통 지면에서 가르치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 국가도 은행도 없는 사람들이 교환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1945년 11월 학술지 Economica에 「포로수용소의 경제 조직」이라는 논문으로 이를 발표했다.

모두가 거의 같은 적십자 소포를 받았다. 연유, 잼, 버터, 비스킷, 통조림 쇠고기, 초콜릿, 설탕, 그리고 담배였다. 그러나 취향은 달랐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는 담배를 내놓았고, 단것을 좋아하는 이는 초콜릿을 내놓았으며, 물물교환이 자리 잡았다. 곧 하나의 재화가 공통 척도로 떠올랐다. 규격이 같고 오래가며 나눌 수 있는 담배였다. 빨래 한 벌은 담배 두 개비쯤, 수용소 매점의 차나 커피, 코코아 한 잔도 비슷한 값이었다.

가격은 여느 시장처럼 움직였다. 소포가 온다는 소문만으로 당밀 값이 몇 분 만에 담배 세 개비에서 네 개비로 뛰었다가, 소문이 부인되자 곧 되돌아갔다.

그레셤 법칙도 작동했다. 사람들은 인기 있는 상표는 피우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유통시켰다. 더 나쁜 것은 파이프 담배로 손으로 말아 만든 담배였다. 크기와 품질이 들쭉날쭉한 이 담배가 통화량을 불렸고, 화폐는 악화되고 물가는 올랐으며, 결국 공장제 담배로 돌아갔다.

담배가 화폐가 되던 때
그것이 드러내는 것

화폐가 희소성에 빚진 것

수용소는 거의 실험실과 같았다. 래드퍼드가 본 것은 상품화폐였다. 담배는 계산 단위이자 교환수단이자 저장수단이었지만, 연기로 사라지기도 하여 불안정했다. 소포가 닿으면 가격이 오르고 재고가 줄어들면 내렸다.

수용소 당국은 매점과 식당을 열고 식량을 담보로 한 지폐를 썼다. 공급이 규칙적인 동안에는 질서가 유지되었다. 1944년 8월 소포와 담배가 절반으로 줄었고, 1945년 초에는 재고가 바닥나 가격이 무너졌으며 매점의 가격표는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오직 빵만이 가치를 지켰다.

교훈은 철조망을 넘어선다. 화폐의 값은 그 희소성과 공급의 규칙성에 두는 신뢰에서 나온다. 너무 많이 찍으면 가치가 떨어지고, 너무 적으면 숨통이 막힌다. 어떤 포고령도 담배를 지정하지 않았다. 관행이 그것을 골랐다. 오늘날 민간 화폐와 디지털 화폐를 둘러싼 논쟁도 같은 물음을 던진다.

화폐가 태어나는 데에는 몇 사람과 희소한 물건 하나, 약간의 신뢰면 족하고, 사라지는 데에는 결핍 하나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