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를 쓰러뜨린 밀 관세
1846년 6월 25일, 영국 상원은 1815년부터 영국산 곡물을 보호해 온 관세, 곡물법의 폐지안을 가결했다. 이를 이끈 총리 로버트 필 경은 그 대가로 자신의 당을 희생했고, 영국은 자유무역으로 기울었다.
보호받은 빵, 희생된 정당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의회는 국내 가격이 쿼터당 80실링 아래에 머무는 한 외국산 밀의 시장 진입을 막는 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의회를 지배하던 지주들에게 그것은 지대를 지켜 주는 보험이었다. 노동자와 제조업자에게 그것은 더 비싼 빵과 올려 주어야 할 임금을 뜻했다. 1838~1839년 맨체스터에서 반곡물법 동맹이 출범했다. 리처드 콥던과 존 브라이트는 집회와 청원과 소책자로 이루어진 새로운 유형의 압력 운동으로 이를 키웠고, 두 사람은 1840년대에 하원에 들어갔다.
토지에 뿌리를 둔 보수당의 수장이던 필은 본래 이 관세를 지키라는 기대 속에 집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1845년 아일랜드의 감자 수확이 무너지자 곡물 보호는 더는 옹호할 수 없게 되었다. 1846년 1월 27일 그는 점진적 폐지안을 발표했다. 세 해에 걸쳐 관세를 낮추어 1849년 2월 1일에는 쿼터당 1실링으로 내린다는 것이었다. 하원은 5월 15일 3독회에서 찬성 327표, 반대 229표로 이를 가결했는데, 필 진영의 상당수가 반대한 결과였다. 상원은 6월 25일 뒤를 이었다.
같은 날 저녁, 하원은 필이 지지하던 아일랜드 강압법안을 292표 대 219표로 부결시켰다. 폐지에 반대하던 보수당 의원들이 야당에 가세해 그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는 며칠 뒤 사임했고, 그의 당은 오랫동안 갈라졌다. 그는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조치를 통과시키면서, 그것이 권력을 앗아 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치러지는 보호의 값
곡물법은 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득을 재분배했다. 지주라는 작고 강력한 집단에 높은 가격을 보장하고, 그 비용은 소비자라는 거대하고 흩어진 집단이 치르게 했다. 2021년의 한 연구는 폐지가 소득 하위 90%에게 이익이 되었고 상위 10%에게는 손실을 안겼다고 결론지었다. 통상적인 추정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영국의 식량 수입 의존도는 1830년대 약 2%에서 1860년대 24%, 1880년대 45%로 높아졌고, 국민소득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몫은 1871년 약 17%에서 1911년 7%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례는 보호가 왜 그토록 풀기 어려운지도 보여 준다. 그것으로 먹고사는 이들은 조직하고, 그 값을 치르는 이들은 좀처럼 조직하지 못한다. 계산이 뒤집히기까지는 치밀한 운동이, 그리고 기근이 필요했다. 오늘날 관세와 식량 주권, 농업 보호를 둘러싼 논쟁도 같은 물음 위에 서 있다. 소수에게 보장된 안전의 값은 누가 치르는가?
관세는 언제나 누군가를 보호하며, 그 보호의 값은 언제나 다른 곳에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