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돈을 빌려 주던 성냥왕
1932년 3월 12일, 이바르 크뤼게르는 파리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세계 성냥의 상당 부분을 쥐고 여러 나라 정부에 돈을 빌려 주던 스웨덴의 산업가였다. 몇 주 뒤, 그의 구조물 일부가 존재하지 않는 자산 위에 서 있었음이 드러났다.
대출의 대가로 얻은 독점
1920년대에 스웨덴 사람 이바르 크뤼게르는 여러 대륙의 성냥 제조업체를 규합하여, 추정에 따라 세계 생산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방식은 새로웠다. 전후 신용이 말라붙은 유럽에서 그는 정부에 돈을 빌려 주고, 그 대가로 해당 국가 안의 성냥 독점권을 얻었다. 프랑스는 1927년 7,500만 달러, 독일은 1929년 1억 2,500만 달러를 받았고,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이 뒤를 이어 1930년에는 총액이 4억 달러에 육박했다.
크뤼게르는 주주들에게 높고 꾸준한 배당을 주었다. 그러나 1929년의 주가 대폭락으로 신용이 말랐고, 그룹은 배당금의 일부를 이익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1932년 초 그는 스웨덴 중앙은행에 추가 지원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먼저 전체 장부를 요구했다. 3월 12일 크뤼게르는 파리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수사관들은 스스로 택한 죽음으로 판단했다. 그룹은 그달 말에 파산이 선언되었다.
장부를 풀어내는 임무를 맡은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의 회계사들은, 약 2억 5,000만 달러로 내세워진 자산이 실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서명이 위조된 이탈리아 채권도 그중 하나였다. 이 증권 가운데 일부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던 재무제표에 올라 있었다.
검증의 자리를 신뢰가 차지했다
수년 동안 누구도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크뤼게르의 신용은 철저히 감사받은 장부보다, 그의 위상과 국가들에 대한 대출, 그리고 꾸준한 배당에 기대고 있었다. 신용이 조여지자 구조물은 버티지 못했다. 수천 명의 스웨덴 소액 투자자와 소규모 은행이 그룹의 증권에 넣어 둔 저축을 잃었고, 칼 구스타프 에크만 총리는 1932년 여름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에서 이 사건은 1933년과 1934년 증권법에 영향을 준 사례로 꼽히며, 그 법은 의무적 재무 공시와 독립 감사의 토대가 되었다. 이 구조는 더 근래의 사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신뢰가 이어지는 동안 새로 들어온 사람의 돈으로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오늘에도 유효한 물음이 남는다. 읽지 않고 믿어 버린 사람의 장부는 누가 읽는가?
평판은 장부를 읽는 일을 대신하지 못하며, 그 간극은 누군가 장부를 펼치는 날에야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