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 구해야 했던
노벨상 수상자들의 펀드
1998년 9월 23일, 금융기관 14곳이 한 헤지펀드에 36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그 펀드의 붕괴는 자신들의 장부도 위협하고 있었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라는 이름은 일반에는 낯설었으나, 파트너 가운데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두 명 있었다.
자본 1달러에 부채 30달러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1994년 2월 살로몬 브러더스 전 부회장 존 메리웨더의 주도로 출범했다. 파트너 가운데에는 옵션 가격 평가법으로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즈가 있었다. 이 펀드의 내기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성격이 비슷한 증권 사이의 미세한 가격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좁혀질 것이라는 데 거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이익이 의미를 가지려면 차입으로 키워야 했고, 1997년 말 이 펀드는 자본 1달러당 약 30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이 구조는 시장이 잔잔하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1998년 8월 러시아가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채무 지급을 중단했다. 투자자들은 가장 안전한 증권으로 몰렸고, 펀드가 좁혀지리라 기대한 가격 차이는 오히려 벌어졌다. 8월 한 달에만 펀드 가치의 44%가 사라졌다. 9월 18일 운용진은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윌리엄 맥도너에게 연락했다. 22일 저녁 주요 은행들이 그곳에 모였고, 합의는 이튿날 오후 6시경 이루어졌다. 14개 금융기관이 약 36억 달러를 내고 펀드 지분 90%를 넘겨받았으며, 초청받은 다른 두 곳은 불참했다.
연준은 단 1달러도 빌려주지 않았다. 10월 1일 의회에서 앨런 그린스펀은 이를 강조했다. 연방 자금은 투입되지 않았고, 약속도 없었으며, 어떤 은행도 강요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준은 채권자들을 한자리에 모았을 뿐이다. 그토록 큰 포지션이 급히 청산되면 이미 불안한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모형이 보지 못한 위험
펀드의 모형은 가격의 역사에 기대고 있었다. 시장이 과거에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측정했으나, 모든 참여자가 동시에 빠져나가려 할 때 어떻게 움직일지는 측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기관들도 비슷한 포지션을 쥐고 있어, 한 곳의 매도는 다음 곳의 손실을 키웠다. 위험은 개별 베팅이 아니라 그 닮음에 있었고, 레버리지가 그것을 증폭했다.
결말은 전설보다 덜 어둡다. 포지션은 새 경영진 아래 단계적으로 정리되었고, 은행들은 1999년 말 이전에 투입금을 전액 회수했으며, 손실의 대부분은 기존 파트너들이 떠안았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열린 질문을 남긴다. 차입한 민간 주체가 얼마나 커져야 다른 이들과 너무 얽혀 아무 파장 없이 무너질 수 없게 되는가. 2008년 위기는 이 질문을 훨씬 큰 규모로 다시 제기하게 된다.
위험은 과거로 재어지지만, 모두가 같은 문으로 빠져나가려 하는 날 그 값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