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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거품

1720 시장과 거품 읽기 3분

1720년, 파리의 캥캉푸아 거리에는 루이지애나 독점권을 쥔 회사의 주식을 사려는 인파가 몰렸다. 몇 달 사이에 존 로의 종이는 재산을 만들었고, 곧 그것을 지웠다.

사실

지폐에서 주식 열풍으로

1716년 스코틀랜드인 존 로는 파리에 지폐를 발행하는 일반은행(Banque Générale)을 열었다.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치세를 끝내며 약 28억 리브르의 부채를 떠안고 있었고, 섭정은 이를 종이로 갚겠다고 나선 이 금융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로는 이어 루이지애나 교역권을 가진 서방회사(Compagnie d'Occident)를 세웠고, 1719년 경쟁 회사들을 흡수해 인도회사(Compagnie des Indes)로 키웠다.

1719년 봄 500리브르 안팎이던 주가는 7월 21일 1,000리브르, 8월 17일 3,000리브르에 이르렀고, 정점에서는 1만 리브르에 가까웠다. 1720년 1월 5일 로는 재무총감이 되었고, 2월에는 이제 왕립이 된 은행이 회사에 흡수되었다. 좁은 캥캉푸아 거리는 임시 거래소 노릇을 했다.

구조는 순환이었다. 회사는 지폐로 살 수 있는 주식을 내놓았고, 은행은 주가를 떠받칠 지폐를 찍었으며, 높은 주가는 새로운 발행을 정당화했다. 통화량은 거의 두 배로 늘었고, 1720년 1월 물가 상승률은 월 23%에 이르렀다.

1720년, 미시시피 거품
그것이 드러내는 것

약속에 기댄 화폐

1720년 5월 21일 로는 지폐와 주식의 가치를 계획적으로 낮춰 거품을 빼려 했다. 이 조치는 엿새 뒤 철회되었으나 신뢰는 이미 깨졌고, 그는 5월 29일 직위를 잃었다. 주가는 9월에 2,000리브르 안팎, 12월에 1,000리브르, 1721년 9월에는 500리브르로 내려앉았다. 로는 1720년 12월 22일 프랑스를 떠나 브뤼셀로 갔고, 1729년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떴다.

이 체제에는 종이 화폐가 경제 활동을 떠받칠 수 있다는 옳은 직관과, 주가를 아직 오지 않은 식민지 수익에 묶어 둔 치명적 혼동이 함께 있었다. 오늘의 논쟁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국채를 떠안는 중앙은행, 이야기에 기대어 값이 매겨지는 자산이 그렇다. 역사가들은 이 체제의 파탄을 프랑스가 발권은행을 오래도록 불신하게 된 원인의 하나로 자주 꼽는다.

거품의 크기는 도달한 주가가 아니라, 그것을 떠받치기 위해 앞으로도 내놓아야 할 약속의 수로 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