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초지를 담보로 삼은 은행
1472년 3월 4일, 시에나 공화국의 행정관들은 고리대를 억제하려는 전당 대부 기관, 곧 몬테 디 피에타의 규약을 승인하였다. 5세기 반이 지난 지금도 이 기관은 「목초지의 산」을 뜻하는 몬테 데이 파스키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으며, 그 이름에는 이 기관을 다시 세운 담보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전당 대부에서 토지를 담보로 한 신용으로
1472년의 시에나는 불평등이 커지던 상업 공화국이었고, 시민들은 사적인 대금업자에 의존하였다. 3월 4일 행정관들은 몬테 디 피에타의 규약을 승인하였다. 프란치스코회가 이탈리아 곳곳에서 장려하던 자선 성격의 전당 대부 기관이었다. 목적은 한정되어 있었다. 맡긴 물건을 담보로, 통상의 고리대가 허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이었다.
전환점은 1624년에 왔다. 시에나는 토스카나 대공국에 편입되어 있었고, 대공 페르디난도 2세가 이 기관을 새로 세웠다. 마렘마 지방 국유 목초지(파스키)의 수입이 예금의 담보로 묶였다. 몬테 데이 파스키는 1624년 11월 2일에 설립되었다. 예금자는 더 이상 약속에 돈을 맡기지 않고, 땅에서 나오는 수입에 맡기게 되었다.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몬테」는 자본의 기금이고 「파스키」는 그 담보이다. 오늘날의 은행이 자기자본과 평판에 기대는 곳에서, 이 은행은 예금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적 농업 수입에 기대었다.
담보는 보험이 아니다
토지에 기댄 구조는 갓 태어난 모든 은행의 문제, 곧 예금자에게 돈을 돌려받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일에 대한 답이었다. 담보는 눈에 보이고, 오래가며, 한 채무자의 변덕이 닿지 않는 곳에 있기만 하면 된다. 같은 논리는 1923년 독일의 렌텐마르크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렌텐마르크 역시 토지를 담보로 삼았다.
그러나 오래 존속했다고 해서 오류까지 막아 주지는 않는다. 2013년 1월 산토리니와 알렉산드리아로 불린 은닉 파생상품 거래가 드러나면서 위기가 시작되었고, 2017년 7월에 정점에 이르렀다. 이탈리아 정부는 81억 유로 규모로 이 은행을 증자하였고, 그중 39억 유로는 재무부가 인수하였으며 나머지는 채권의 강제 주식 전환으로 충당되었다. 흔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불리는 곳이 공권력의 구제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5세기의 역사가 건실한 재무제표를 대신해 주지는 못하였다. 어제의 담보였던 농업 수입은 국가가 최후의 수단으로 내놓는 보증에 자리를 내주었고, 은행의 위험을 누가 지는가라는 물음은 5세기가 지난 지금도 열려 있다.
은행은 담보에서 태어나고, 정직한 장부로만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