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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가지는 것이
범죄가 된 날

1933 화폐와 금속 읽기 4분

1933년 4월 5일,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인에게 5월 1일까지 금을 연방준비제도에 넘기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날까지 평범하던 금 보유는 징역 10년까지 받을 수 있는 범죄가 되었다.

사실

금을 내놓거나, 징역 10년을 감수하거나

1933년 봄, 미국은 4년간의 위기와 뱅크런에서 막 벗어나던 참이었다. 저축자들은 지폐를 금으로 바꾸었고, 은행은 온스당 20.67달러로 이를 내줘야 했으며, 연방준비제도의 준비금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금본위제는 통화량을 금 보유량에 묶어 둔다. 금이 빠져나가는 동안 중앙은행은 경제를 떠받칠 유동성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취임 한 달 뒤, 루스벨트는 1917년의 적성국교역법과 3월에 이를 확장한 긴급은행법을 근거로 1933년 4월 5일 행정명령 6102호에 서명했다. 금화, 금괴, 금증서의 퇴장을 금지하고 5월 1일까지 연방준비은행에 넘기게 했으며, 대가는 온스당 20.67달러였다. 위반하면 최대 1만 달러의 벌금과 징역 10년에 처해질 수 있었다. 1인당 100달러어치 금화(약 5온스), 수집가가 귀하게 여기는 희귀 주화, 산업·전문·예술용 금은 예외로 남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가격이다. 정부는 금을 온스당 20.67달러라는 옛 평가로 사들였다. 몇 달 뒤인 1934년 1월에 통과된 금준비법은 달러를 금 온스당 35달러로 정했다. 20.67달러에 내놓은 금은 이제 69% 더 값나갔고, 그 이익은 명령에 따른 이들이 아니라 재무부에 돌아갔다.

1933년, 금을 가지는 것이 범죄가 된 날
그것이 드러내는 것

국가가 화폐의 주도권을 되찾을 때

이 사건은 금본위제가 무엇보다 정치적 제약이었음을 보여 준다. 누구든 지폐를 금으로 바꿀 수 있는 동안, 중앙은행은 보유자들의 신뢰에 갇혀 있었다. 금을 민간의 손에서 거두고 이어 그 가격을 올림으로써 워싱턴은 제약을 풀고 통화량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평가절하 뒤에는 창구로 몰려드는 인출 사태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용을 넓힐 수 있었다.

통화 약속에 관한 오래가는 교훈이 남는다. 태환은 약속이며, 그것이 너무 비싸지면 국가는 명령 하나로 거둘 수 있다. 미국에서 금의 민간 보유가 다시 허용된 것은 1974년 12월 31일에 이르러서였다. 금의 지위를 둘러싼 논쟁, 혹은 디지털 안전자산을 둘러싼 논쟁은 매번 같은 물음을 다시 연다. 최후의 화폐를 누가 쥐며, 어떤 조건에서인가?

태환되는 화폐는 국가가 태환해 주려는 동안만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