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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를 거절당한 상사

1866 위기와 파산 읽기 4분

1866년 5월 10일 오후 3시 30분, 런던 최대의 어음 할인상사가 지급 정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문에 붙였다. 잉글랜드은행이 구제를 거절한 직후였다. 이튿날 시티는 「검은 금요일」을 겪었고, 정부는 은행권 발행을 제한하던 법을 정지시켰다.

사실

문 앞에서 거절당한 상사

오버렌드 거니(Overend, Gurney & Co.)는 예사로운 회사가 아니었다. 1807년 새뮤얼 거니가 세운 이 상사는 당시 거의 모든 상거래를 결제하던 환어음을 사고팔았다. 1850년대에 이 회사의 예금은 경쟁사 세 곳을 합친 것과 맞먹었고, 해마다 이곳을 거쳐 간 어음의 금액은 영국 국가채무의 절반가량에 이르렀다. 그러나 1859년부터 새 세대의 동업자들이 회사를 장기 대출로 끌고 갔다. 농장, 곡물, 제철소, 해운, 철도가 그 대상이었고, 심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865년 7월, 회사는 유한책임회사로 바뀌어 액면 50파운드짜리 주식 10만 주를 발행했다. 동업자들은 약 2,000만 파운드의 대차대조표에 400만에서 500만 파운드의 구멍이 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1866년 봄이 나머지를 마무리했다. 전쟁 우려, 주가 하락, 잇단 도산이 겹쳤다. 5월 9일 법원이 오버렌드 거니는 미드웨일스 철도에 대한 채권을 회수할 수 없다고 판결하자 예금 인출이 시작되었다. 같은 날 동업자들은 잉글랜드은행에 구제를 요청했고, 은행은 장부를 살필 위원회를 보낸 뒤 거절했다. 유동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급 불능이라는 이유였다.

덫은 주식 자체에 있었다. 한 주 50파운드 가운데 납입된 것은 15파운드뿐이었고, 나머지 35파운드는 회사가 요구하면 내야 하는 몫으로 남아 있었다. 청산이 그것을 불렀다. 15파운드를 낸 주주들은 25파운드를 더 물어야 했고, 동업자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졌다.

1866년, 구제를 거절당한 상사
그것이 드러내는 것

거절이 낳은 원칙

거절이 곧 방치는 아니었다. 잉글랜드은행은 지급 불능인 한 회사에는 문을 닫았고, 나머지 전부에는 문을 열었다. 5월 10일 목요일부터 12일 토요일 사이에 어음 매입은 세 배로, 환매조건부 할인은 3분의 1만큼 늘었다. 은행은 자기 금고를 비워 그 구제를 감당했고, 총자산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흘 만에 16%에서 2%로 떨어졌다. 5월 11일, 글래드스턴 재무장관은 은행권을 금에 묶어 두던 1844년 은행법을 정지시켰다. 조건은 하나, 할인율을 10%로 올리는 것이었다. 은행은 금의 뒷받침이 없는 지폐를 끝내 한 장도 발행하지 않았다. 발표만으로 충분했다.

7년 뒤 배젓은 이 며칠에서 최종 대부자 원칙을 끌어냈다. 공황에는 넉넉히, 높은 금리로, 평시라면 건전했을 담보를 받고, 그 담보를 내놓을 수 있는 누구에게나 빌려주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5월 9일에 그어진 선에 달려 있다. 구제하는 유동성 부족 기관과, 쓰러지게 두는 지급 불능 기관을 가르는 선이다. 오늘날의 중앙은행도 여전히 그 선을 내세운다. 다만 장부를 읽을 시간이 하룻밤뿐일 때, 그 선은 말하기보다 긋기가 어렵다.

중앙은행은 무엇을 빌려주는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빌려주지 않는가로도 규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