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달력

규칙이 바뀌자 무너진 승리

1923 시장과 거품 읽기 4분

1923년 3월 20일, 멤피스의 한 식료품 상인이 공매도 세력에게 빌려주었던 자기 회사 주식 4만 2천 주의 반환을 요구했다. 주가는 몇 시간 만에 75달러에서 124달러로 올랐다. 그날 저녁 뉴욕증권거래소는 거래를 정지했고, 이어 인도 기한을 늘렸다. 아침의 승자는 가을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잃는다.

사실

홀로 벌인 매점

클래런스 손더스는 1916년 멤피스에 미국 최초의 셀프서비스 식료품점을 열었다. 1923년에 피글리 위글리는 매장 1,267곳을 거느렸고, 주식은 1922년 2월부터 뉴욕에 상장되어 있었다. 1922년 가을, 동부의 독립 가맹점 몇 곳이 무너지자 월가의 투자자들은 하락을 노린 공격에 나섰고, 주가는 39달러까지 내려앉았다. 손더스는 남부 은행가들에게서 1천만 달러를 빌려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1923년 3월, 그는 발행주식 20만 주 가운데 약 19만 8천 주에 해당하는 매수 주문을 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증권사들이 바로 그 주식을 공매도하는 이들에게 빌려주도록 두었다. 3월 20일, 그는 그중 4만 2천 주의 반환을 요구했다. 거래소 규정은 인도 기한을 24시간으로 정하고 있었다. 살 수 있는 주식이 없자 주가는 오전 사이에 75달러에서 124달러로 뛰었다.

몇 시간 뒤 거래소는 거래를 정지했다. 3월 22일에는 지분이 그렇게 집중되어서는 자유로운 시장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상장을 폐지했다. 3월 23일, 손더스는 주당 100달러에 정산에 응했다. 그에게는 약 5백만 달러의 빚과 팔 곳이 없는 주식 10만 주 남짓이 남았다. 8월에 그는 주식과 자동차와 분홍 대리석 저택을 채권자들에게 넘겼고, 개인 파산은 이듬해에 뒤따랐다.

승부를 가른 것은 거래가 아니라 규정의 변경이었다. 거래소가 공매도자에게 주어진 인도 기한을 24시간에서 닷새로 늘리자, 지방에서 주식이 밀려들었다. 손더스는 자기 앞에 2만 5천 주가 넘는 공매도 잔고가 있다고 믿었다. 거래소가 센 수는 11,200주였다.

1923년, 규칙이 바뀌자 무너진 승리
그것이 드러내는 것

기한을 쥔 쪽이 판을 쥔다

매점은 주식을 가짐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날짜를 가짐으로써 이긴다. 공매도자가 빌린 주식을 정해진 때에 돌려주어야 하는 한, 물건을 쥔 쪽이 값을 부른다. 손더스는 물건을 쥐고 있었으나 달력을 쥐고 있지는 않았다. 그 달력은 증권사들이 직접 운영위원회를 이루던, 곧 심판이자 당사자였던 사설 기관의 것이었다. 공적 규제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가 세워지기까지는 1929년의 공황과 1934년을 기다려야 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정보에 관한 것이다. 손더스는 자신이 공격하는 상대의 규모를 모른 채 싸웠고, 그 크기를 두 배 넘게 잘못 보았다. 공매도 잔고와 대차거래의 규모는 지금도 평범한 시장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규정으로 정해지고, 또 다투어진다.

손더스는 거의 모든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 날짜를 정하는 규정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