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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담보로 한
렌텐마르크

1923 화폐와 금속 읽기 3분

1923년 11월 15일, 독일은 금 없이 국토의 토지와 기업을 담보로 삼은 렌텐마르크를 유통시켰다. 렌텐마르크 1은 종이 마르크 1조에 해당했고, 폭등하던 물가는 몇 주 만에 멈췄다.

사실

금 없는 화폐, 땅에 기댄 화폐

1923년 가을, 마르크는 가치를 잃기 전에 서둘러 써 버려야 하는 종이에 지나지 않았다. 1월의 루르 점령 이후 독일 정부는 인쇄기를 돌려 적자를 메웠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저축한 사람들은 예금이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았고, 빚진 사람들은 거의 공짜로 빚을 털어 냈다. 새 화폐가 필요했으나 이를 보증할 금이 나라에 충분하지 않았다. 카를 헬페리히 등이 주장하고 재무장관 한스 루터의 계획에 반영된 해법은, 화폐를 금속이 아니라 실물 자산에 묶는 것이었다.

10월 중순 정부는 도이체 렌텐방크를 세웠다. 농지와 산업, 상업에 총 32억 렌텐마르크의 저당이 설정되었고, 은행은 이 담보를 근거로 11월 15일부터 엄격히 제한된 양의 지폐를 발행했다. 11월 12일 통화 특별위원에 임명된 얄마르 샤흐트가 환율 문제를 정리했다.

11월 20일 교환 비율이 확정되었다. 렌텐마르크 1은 종이 마르크 1조, 1달러는 4.2렌텐마르크로 전쟁 전의 환율이었다. 그날 달러는 종이 마르크로 약 4조 2천억에 해당했으니, 0 열두 개를 단번에 지운 셈이다.

1923년, 땅을 담보로 한 렌텐마르크
그것이 드러내는 것

신뢰는 한도에서 태어난다

토지 담보는 무엇보다 신호로서 의미가 있었다. 신뢰를 되살린 것은 발행에 둔 한도였다. 이어진 몇 달 동안 한스 루터와 얄마르 샤흐트는 통화량을 억제하고 대폭의 예산 삭감을 단행했고, 국가는 더 이상 적자를 인쇄기로 메우지 않게 되었다. 곧 「렌텐마르크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렌텐마르크는 과도기의 화폐였다. 1924년 8월 30일 도스 안에 따라 금과 외환을 뒷받침으로 한 라이히스마르크가 등가로 뒤를 이었고, 렌텐마르크 지폐는 1948년까지 효력을 유지했다. 이 사건은 금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화폐의 닻을 둘러싼 오늘의 논쟁을 비춘다. 화폐를 지탱하는 것은 담보가 된 물건보다 그 양을 묶는 규칙이다. 이 교훈은 짐바브웨처럼 더 최근의 위기에도 들어맞는다. 발행에 고삐가 풀려 있는 한 화폐는 의미를 계속 잃었다.

화폐는 지킬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하기를 멈추는 날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