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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과 바꾸지 않은 섬

1667 무역과 세계화 읽기 4분

1667년 7월 31일, 브레다 조약이 제2차 영란전쟁을 끝냈다. 네덜란드가 육두구나무가 자라는 길이 3킬로미터, 너비 1킬로미터의 섬을 지키려고 맨해튼을 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약문에는 그런 말이 없다. 각자 쥐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갖는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사실

3킬로미터에 1킬로미터

19세기 중엽까지 반다 제도는 세계에서 육두구와 메이스가 나는 유일한 곳이었다. 룬섬은 그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고, 가장 작으며, 지키기가 가장 어려웠다. 1616년 12월 25일, 너새니얼 코트호프 선장이 영국 동인도회사를 대리해 그곳에 상륙했고, 주민들에게 제임스 1세를 군주로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했다. 그는 1620년 전사할 때까지 1,540일 동안 섬을 지켰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21년에 이 문제를 매듭지었다. 제도의 인구는 약 1만 4천 명에서 1천 명 남짓한 생존자로 줄었고, 그들은 강제 노동력으로 농원에 흩어졌다. 50만 그루의 육두구나무는 1.2헥타르짜리 예순여덟 개 구획으로 나뉘어 계약 재배인에게 맡겨졌다. 감시할 수 없는 룬섬에서 회사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나무를 모두 베어냈다.

1664년, 잉글랜드인들이 룬섬을 다시 차지했다. 요크 공작이 뉴암스테르담을 빼앗아 뉴욕으로 이름을 바꾼 바로 그해다. 네덜란드는 그들을 두 번째로 쫓아냈다. 브레다에서 제3조는 uti possidetis, 곧 쥐고 있는 것은 그대로 갖는다는 원칙을 1667년 5월 20일부로 적용했다. 네덜란드는 수리남과 코르만틴 요새와 룬섬을 지켰고, 잉글랜드는 뉴네덜란드를 지켰다. 어느 쪽도 무엇을 내준 것이 아니다. 각자 이미 잃은 것에 대한 청구를 거두었을 뿐이다.

힘의 균형은 회계 장부의 한 줄에 들어 있다. 섬에서 회사는 재배인에게 네덜란드 시장 육두구 가격의 122분의 1을 지급했다. 독점은 무엇보다 비싸게 팔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다툴 수 없는 값에 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1667년, 맨해튼과 바꾸지 않은 섬
그것이 드러내는 것

섬을 산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지운 것이다

브레다가 정리한 것은 교환이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룬섬 자체는 아무 값도 없었다. 나무가 없으니 바위 덩어리였다. 그 값은 입장권의 값이었다. 런던이 언젠가 경쟁 상관을 다시 열고 암스테르담의 육두구 값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네덜란드는 섬을 얻은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지웠다. 독점이 치르는 가장 흔한 비용이자, 장부에서 가장 읽히지 않는 비용이다.

그 뒤의 일은 이 방법이 얼마나 무른지를 말해 준다. 장소에 기댄 독점은 식물이 옮겨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1810년 영국이 반다를 차지하면서 묘목을 실론과 그레나다와 싱가포르로 실어 갔고, 그 지대는 몇십 년 만에 사그라들었다. 맨해튼은 옮길 수 없었다.

1667년, 길이 3킬로미터에 너비 1킬로미터의 섬은 그것이 경쟁자에게 막아 준 일만큼의 값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