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달력

관세에 맞선
천 명의 경제학자

1930무역과 세계화읽기 4분

1930년 6월 17일,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미국의 수입 관세를 높이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서명했다. 천 명이 넘는 경제학자가 서명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뒤였다.

사실

경제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된 법

1929년 대폭락 이후 의회는 미국 농민을, 이어 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하려 했다. 관련 위원회를 이끌던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이 법안을 이끌었고, 각 의원은 저마다 관세를 더 얹었다. 하원은 845개 품목의 관세를, 상원은 890개 품목의 관세를 올렸다.

1930년 5월, 천 명이 넘는 경제학자가 후버에게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헨리 포드는 이 관세가 「경제적 어리석음」이라고 직접 말했다. 소용없었다. 상원은 6월 13일 44대 42로 법안을 가결했고, 하원은 245대 177로 승인했으며, 후버는 17일에 서명했다.

미국의 교역 상대국은 기다리지 않았다. 최대 고객이던 캐나다는 열여섯 개 품목에 상계관세를 매겼고, 이는 캐나다로 향하는 미국 수출액의 약 30%에 해당했다. 다른 나라들도 뒤따랐다. 저마다 시장을 닫아 자국 생산자를 지키려 했고, 경제학자들은 이 논리를 「이웃 궁핍화」라 부른다.

1930년, 관세에 맞선 천 명의 경제학자
그것이 드러내는 것

보호무역은 결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미국의 수출은 1929년 54억 달러에서 3년 뒤 21억 달러로 줄었고, 세계 무역은 1934년까지 최대 3분의 2가 감소했다. 그러나 단서가 필요하다. 대공황, 디플레이션, 신용 붕괴가 관세보다 훨씬 무겁게 작용했으며, 평균 관세율 인상 폭은 약 2.5%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법이 위기를 만든 것은 아니다. 문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문을 닫았을 뿐이다.

교훈은 호혜성에 있다. 관세는 첫날부터 한 생산자를 지키지만, 다른 생산자를 해치는 보복을 부른다. 1934년 의회는 대통령에게 교역 상대국별로 관세 인하를 협상할 권한을 주었고, 이는 GATT, 이어 WTO로 가는 첫걸음이 되었다. 국가가 장벽을 높일 때마다 논쟁은 되살아난다. 누구를 지키며, 보복의 값은 누가 치르는가.

이웃에게 문을 닫는 것은 이웃도 문을 닫으라고 청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