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사재기하려던 금요일
1869년 9월 24일, 뉴욕의 두 금융업자가 미국의 금을 사재기하려 했다. 재무부가 나서자 금값은 몇 시간 만에 폭락했고, 월가는 공황에 빠졌다.
거의 유통되지 않던 금속에 건 내기
1862년 이래 종이 달러인 「그린백」은 금으로 바꿀 수 없게 되었고, 금은 뉴욕의 「골드 룸」이라는 거래소에서 그린백과 따로 거래되었다. 그 값은 신뢰의 등락을 따라 움직였다. 1869년 여름, 이리 철도의 경영진 제이 굴드와 제임스 피스크는 금을 대량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계산은 이러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시장에서 실제로 유통되는 금은 약 1,5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재무부는 그보다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정부가 팔지 않으면, 희소해진 금은 인도를 약속한 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값이 될 터였다.
재무부가 움직이지 않도록 두 사람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주변, 곧 그의 매제 에이블 코빈에게 공을 들였고, 금값이 오르면 달러가 약해져 곡물 수출에 유리하다고 설득했다. 9월 24일 금요일, 금은 약 145달러에 출발해 160달러를 넘어 올랐다. 그러나 그랜트는 그 수작을 알아챘다. 전날 저녁 그는 조지 부트웰 재무장관에게 금 400만 달러의 매각을 허가했다. 소식이 거래소에 닿자마자 금값은 133달러 안팎으로 무너졌다.
메커니즘은 한 문장에 담긴다. 사재기는 팔 수 있는 힘 있는 자가 없는 동안에만 성공한다. 금을 선물로 판 이들은 어떤 값에든 인도해야 했고, 큰 재고를 쥔 재무부는 한마디로 물꼬를 다시 열 수 있었다. 국가에는 작은 액수지만 그토록 좁은 시장에는 막대했던 400만 달러가 판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좁은 시장은 조작되기 쉬운 시장이다
충격은 금에서 멈추지 않았다. 포지션을 메워야 했던 투기꾼들이 증권을 내던지면서 주식시장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약 5분의 1이 떨어졌다. 여러 중개사가 파산했고, 골드 룸은 거래를 정리하느라 며칠간 문을 닫았다. 굴드는 부유한 채로 빠져나왔고 피스크는 약속을 저버렸다. 의회는 조사에 나섰고, 그랜트 행정부의 평판은 흠집이 났다.
이 일화는 얇은 시장이 누가 물량을 댈 수 있는가에 얼마나 달려 있는지를 보여 준다. 실제 거래되는 양이 다른 곳에 쌓인 재고에 비해 작으면, 결연한 매수자가 가격을 정할 수 있고, 모자란 재고를 쥔 자만이 그를 꺾을 수 있다. 이 구도의 메아리는 1869년을 훨씬 넘어 1980년 헌트 형제의 은에서, 거래가 얇은 시장의 조작을 둘러싼 모든 논쟁에 이른다. 유동성이 얕은 곳에서 가격은 소문이다. 그리고 재고를 쥔 국가는 결코 중립적인 참가자가 아니다.
시장은 그것을 붙잡을 힘을 가진 이가 없는 동안에만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