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문을 닫은 증권거래소
1968년 6월 12일, 세계 제일의 금융시장이 일주일에 하루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파업도 국상도 아니었다. 전날의 주문이 주인을 바꾼 종이 증권을, 사무원들이 더 이상 따라가며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이를 따라잡으려 문을 닫은 거래소
1960년대에는 종이 없이 결제되는 것이 없었다. 거래 한 건마다 인쇄된 증권과 서명된 양도서를 옮기고, 서명을 대조하고, 장부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이 방식은 거래량이 크지 않을 때에만 버틴다. 그런데 뉴욕증권거래소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1964년 약 490만 주에서 4년 뒤 1,490만 주로 늘었다. 고정 수수료의 보호를 받던 증권사들은 전산화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사무원들은 주 7일 일했고 야간조가 채용되었지만, 증권은 여전히 쌓여 갔다.
증권거래위원회는 먼저 1967년 8월과 1968년 초에 거래 시간을 줄였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6월 12일, 뉴욕증권거래소는 가장 눈에 띄는 조치를 택했다. 12월 31일까지 수요일마다 문을 닫아, 후선 부서가 밀린 일을 따라잡게 한 것이다. 5월에는 이미 한 증권사 피카드 앤드 컴퍼니가 무너진 뒤였다.
혼란의 크기는 지연보다 사라진 증권에서 드러난다. 위원회는 1971년 증권사 관행에 관한 보고서에서, 여러 회사에서 고객에게 갚아야 할 증권 가운데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의 가치가 자기자본의 두 배를 넘었다고 밝혔다. 그 혼란은 편리한 은폐막이기도 했다. 1964년부터 1969년까지 1억에서 4억 달러가 빼돌려졌으리라 추정된다.
시장이 약속하는 것과 시장이 건네는 것
결정타는 서류가 아니라 시세에서 왔다. 1969년 5월부터 1년 사이 다우존스 지수는 35% 내렸고, 거래량이 줄면서 비용은 이미 올라 있던 회사들의 수입이 무너졌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회원사 160곳이 사라졌고, 그 가운데 절반가량은 합병으로 사라졌다. 1970년 10월, 전국 다섯째 규모의 증권사 굿바디 앤드 컴퍼니가 무너지면서 거래소의 보증기금은 2,100만 달러를 썼고, 12월에 의회는 증권계좌 보험을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어 증권 실물 자체가 물러났다. 1973년에 설립된 예탁결제회사가 그것을 한 금고에 묶어 두고, 거래는 장부상의 기재만으로 끝나게 했다.
이 일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시장의 한쪽을 가리킨다. 가격은 1초 만에 만들어지지만, 인도는 사람과 시간표와 기계에 달려 있고, 위험은 바로 그곳에서 보이지 않게 쌓인다. 그러므로 결제 기간을 줄이는 일은 배관 공사가 아니다. 교환의 약속이 약속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일이다.
여섯 달 동안 뉴욕증권거래소는 밀린 장부를 매주 하루의 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