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보다 먼저 생긴 관세동맹
1834년 1월 1일, 독일의 18개 영방이 내부 관세 장벽을 없애고 공통 관세를 채택했다. 정치적 통일보다 37년 앞서, 독일 시장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국가보다 먼저 온 시장
나폴레옹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 연방에는 자유시 네 곳을 포함해 39개의 영방이 있었다. 영방마다 관세와 도량형과 화폐가 달랐다. 독일을 가로지르는 화물은 여러 경계를 넘어야 했고, 경계마다 세금과 절차가 붙어 상품값을 올리고 여정을 늦추었다.
길을 연 것은 프로이센이었다. 1818년의 프로이센 관세법은 여러 조각으로 흩어진 자국 영토 안의 내부 관세를 폐지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상품에는 국경에서 세금을 물렸다. 사이에 끼인 작은 영방들은 가입하는 편이 이롭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1828년 프로이센은 헤센다름슈타트와 손을 잡았고, 같은 해 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는 남독일 관세동맹을 결성했다. 중부 독일의 동맹도 곧 뒤따랐다.
1833년의 협상을 거쳐 「관세동맹」이라는 뜻의 졸페라인(Zollverein)이 1834년 1월 1일 발효되었다. 관세 수입은 한데 모아 회원국끼리 나누었고, 이 분배를 수월하게 하려고 1834년에 인구조사가 도입되었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가장 열성적인 선전가였다. 그는 독일인이 영국을 위해 「물 긷는 자와 장작 패는 자」가 될까 두려워했고, 영국 상품과의 경쟁으로부터 보호받는 큰 시장을 주장했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동기는 한결 현실적이기도 했다. 경제사학자 플로리안 플뢰클에 따르면, 국경 하나를 관리하는 편이 여러 개를 관리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었다.
정치의 지렛대가 된 경제 통합
졸페라인은 관세동맹이 통일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아무도 그렇게 예고하지 않았는데도 그러했다. 회원국들은 함께 협상하고, 수입을 나누고, 제3자 앞에서 한목소리를 내는 법을 익혔다. 1871년 독일 제국이 선포되었을 때, 제국은 이 동맹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넘겨받았다. 역사가들은 성장에 미친 실제 효과를 두고 의견이 갈리며, 프로이센 경제만을 강화했는지 의심하는 이도 있다. 다만 제도적 의의는 크게 다투어지지 않는다.
교훈은 독일을 넘어선다. 관세동맹은 내부의 개방과 외부의 보호 사이의 영구적 타협이며, 누가 관세를 거두고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라는 물음을 늘 남긴다. 유럽 통합 또한 공동 관세를 첫 기둥의 하나로 삼았다. 교역이 정치에 앞서는가, 아니면 정치를 준비할 뿐인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기 전에, 먼저 그들의 관세를 하나로 묶는 일이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