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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무너뜨린 은행

1995 위기와 파산 읽기 4분

1995년 2월 26일, 1762년에 세워진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은행이 지급불능을 선언했다. 국가에 돈을 빌려주고 전쟁을 대던 은행이었다. 그 은행을 무너뜨린 것은 싱가포르에 나가 있던 스물여덟 살 딜러의 베팅이었다.

사실

거래 오류 계좌가 낭떠러지가 되기까지

싱가포르에서 닉 리슨은 베어링 퓨처스의 트레이딩 부서를 이끌면서, 드물게도 후선 업무까지 함께 관장했다. 즉 자기 거래를 자기가 체결하고 자기가 기록했다. 명목상 그의 업무는 오사카에 상장된 닛케이지수 선물과 싱가포르 시멕스(Simex)의 선물 사이에서 미세한 가격차를 취하는 차익거래였고, 이는 위험이 없다고 여겨지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일본 지수의 안정에 걸고 거대한 방향성 포지션을 쌓았다. 손실은 1992년에 열린 88888번 거래 오류 계좌에 넣어 두었고, 그 계좌는 런던에 보내는 보고서에 나타나지 않았다.

1995년 1월 17일 고베 지진이 닛케이를 끌어내렸다. 리슨은 정리하는 대신 배로 늘렸다. 지수를 되돌리려는 기대로 더 사들인 것이다. 2월 23일 그는 달아났다. 26일 베어링스는 지급불능을 선언했다. 손실은 약 8억 2700만 파운드로, 은행의 자기자본을 넘어섰다. 3월 6일 네덜란드의 ING가 상징적인 1파운드에 이 은행을 인수하고, 채권자에게 갚기 위해 5억 4000만 파운드를 넣었다. 독일에서 체포되어 싱가포르로 넘겨진 리슨은 1995년 12월 그곳에서 6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은폐 자체가 아니라, 그 은폐가 훤히 드러난 자리에서 요구했던 것이다. 숨긴 계좌의 증거금 요구를 메우기 위해 리슨은 런던에 막대한 송금을 청했고, 런던은 보냈다. 위험이 없다던 차익거래가 어째서 그룹 현금의 점점 더 큰 몫을 삼키는지,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베어링스 은행의 트레이딩 룸
그것이 드러내는 것

위험은 시장에 있지 않았다

리슨의 포지션 가운데 정교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베어링스를 죽인 것은 난해한 파생상품이 아니라 조직의 초보적인 결함이었다. 같은 사람이 주문을 내고 그 주문을 기록했다. 전선과 후선을 나누는 일은 행정적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실수가 거짓말이 되는 것을, 다시 거짓말이 파산이 되는 것을 막는 장치다. 영국 의회에 제출된 공식 조사보고서 역시 시장의 일격이 아니라 내부통제와 감독의 실패를 결론으로 삼았다.

이 사건은 감독당국의 시선을 운영위험 쪽으로 오래도록 옮겨 놓았다. 시세가 아니라 절차와 사람에서 생겨나는 위험이며, 바젤 협약은 이를 독립된 범주로 삼게 된다. 그럼에도 교훈은 되풀이해서 다시 배워야 했다. 2008년 소시에테제네랄, 2011년 UBS가 같은 악보를 다시 연주했다. 홀로 남겨진 딜러, 우회된 통제, 너무 늦게 발견된 손실.

233년을 이어 온 은행은 시장 때문이 아니라, 없는 통제 때문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