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지폐가 값이 오르다
1993년 5월 10일, 이라크 중앙은행은 자신이 발행한 25디나르 지폐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바그다드에서 끊긴 북부에서는 발행자 없는 그 지폐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화폐로 남았다. 10년 뒤, 그 한 장은 공식 지폐 300장과 바뀌었다.
발행자를 잃은 화폐
1990년까지 이라크는 자국 지폐를 직접 만들지 않았다. 영국의 데라루(De La Rue)가 찍었고, 원판은 스위스제라고 전해져 「스위스 디나르」라는 별칭이 붙었다. 걸프전 뒤의 금수 조치가 그 길을 막았다. 바그다드는 자국과 중국에서 보통 종이에 조악하게 찍은, 사담 후세인의 초상이 든 지폐를 내놓았다. 1993년 5월 5일, 당국은 옛 25디나르 지폐를 가진 이들에게 창구로 가져올 엿새를 주었다. 5월 10일이 지나자 중앙은행은 그것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1991년부터 비행금지구역의 보호를 받던 쿠르드 북부에는 그 기한도, 그 창구도 없었다. 25디나르 지폐 70억 장 가운데 약 50억 장이 그곳에 묶였다. 달리 쓸 것이 없어 사람들은 그것을 계속 썼다. 어떤 국가도 보증하지 않았고, 어떤 당국도 그 가치를 조절하지 않았으며, 어떤 인쇄기도 새 지폐를 찍지 않았다. 남부에서는 재정 수요가 윤전기를 돌려 물가상승률이 연 250% 안팎에 이르렀다. 북부에서는 지폐의 수량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낡아 없어지는 만큼 줄어들 뿐이었다.
나머지는 환율의 문제다. 1993년에는 1대 1이던 두 디나르가 되돌아오지 않고 벌어졌다. 1998년부터 2002년 1월까지 스위스 디나르 1에 사담 디나르 약 100, 2003년 봄에는 300이었다. 2003년 10월, 연합국 임시행정처는 시장 가격과 구매력 평가 사이를 갈라 150대 1로 정했다.
화폐를 떠받치는 것
종이 지폐는 그것을 보증하는 제도 덕분에 값한다고 흔히 가르친다. 스위스 디나르에는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발행자가 공개적으로 그것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것은 11년 동안 그 나라에서 가장 안정된 화폐였다. 두 가지가 그것을 떠받쳤다. 고정되어 버린 수량, 그리고 달리 계산 단위를 갖지 못한 주민들의 암묵적 합의다.
다만 이 교훈은 신중함을 요구한다. 희소성과 수용만으로도 값은 지탱된다. 발행량에 상한을 둔 오늘날의 화폐를 두고 오가는 논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늘어날 수 없는 통화량은 조절될 수도 없다. 최종 대부자도 없고, 찢어진 지폐를 대신할 새 지폐도 없으며, 충격이 닥쳤을 때 기댈 곳도 없다. 스위스 디나르는 중앙은행 없이도 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중앙은행이 무엇을 하는지를 그 빈자리로 드러냈다.
11년 동안 이라크 북부는 발행자가 무효라고 선언한 지폐로 물건값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