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6만 장이
날아든 날
1958년 9월 18일, 캘리포니아의 한 은행이 아무것도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용카드 6만 장을 부쳤다. 훗날 세계의 소비를 조직하게 될 물건은, 법이 결국 금지하게 될 수법에서 태어났다.
시험 도시에 뿌려진 6만 통의 봉투
캘리포니아 중부 계곡의 프레즈노는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보기에 두 가지 미덕을 지녔다. 그 은행이 지역 가구의 상당수의 계좌를 쥐고 있었고, 실패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도시가 외진 곳이었다. 1958년 9월 18일, 그곳에 봉투 6만 통이 배달되었다. 각 봉투에는 이미 사용 가능한 뱅크아메리카드가 들어 있었고, 서류도 면담도 신청도 없이 300달러에서 500달러의 회전 신용이 열렸다. 지역 상인 300여 명은 카드로 결제된 매출마다 6%의 수수료를 떼는 조건에 미리 동의해 두었다.
이 수법은 익히 알려진 교착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은 카드를 위해 계산대를 갖추는 상인은 없고, 어느 상인도 받지 않는 카드를 신청하는 사람도 없다. 카드를 일방적으로 부침으로써 은행은 시장의 양쪽을 같은 날 만들어 냈다. 결제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청구서도 그러했다.
첫해 연체율은 약 22%에 이르렀다. 통상적인 할부신용이 4% 안팎이던 시절이다. 우편함에서 빼돌려진 카드, 한 번도 심사받지 않은 차입자, 상인의 부정까지 겹쳤다. 은행은 누구에게 빌려주는지도 모른 채 빌려준 것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손실은 880만 달러를 넘었고, 광고와 관리비를 더하면 그 이상이었다.
은행이 실제로 산 것
그 잃어버린 수백만 달러가 산 것은 대출 자산이 아니라 하나의 망이었다. 지급수단은 홀로 있으면 아무 값도 없다. 보유자에게의 쓸모는 그것을 받아 주는 상인의 수와 함께 커지고, 상인의 관심은 보유자의 수와 함께 커진다. 경제학은 훗날 이 구조에 양면시장이라는 이름을, 그 출발의 난제에는 초기 확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레즈노는 그 값비싼 증명이었다. 초기의 손실은 사고가 아니라 입장료였다.
이후의 일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은행은 사업을 정비했고, 1966년부터 다른 금융기관에 시스템을 면허 형태로 열었으며, 그 전체가 1976년에 비자(Visa)라는 이름을 얻었다. 다만 수법 자체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판정되었다. 1970년 미국 의회는 신청하지 않은 카드의 발송을 금지했다. 프레즈노가 남긴 것은 이후 모든 플랫폼이 빌려 간 교훈이다. 모바일 결제에서 중개 장터까지, 초기에 감수한 손실은 뒤늦은 진입자가 더는 좁히지 못하는 자리를 사들인다.
망의 값은 한 번 치르고, 그 뒤로는 날마다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