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무보다 못하던 날
2020년 4월 20일, 미국 기준 유가는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로 마감했다. 거의 무가치가 아니라 무보다 못한 값이었다. 아무도 둘 곳을 알지 못하는 석유를 떠넘기려면 이제 돈을 내야 했다.
넘겨주려고 돈을 치르는 배럴
2020년 봄, 봉쇄 조치로 비행기와 트럭과 자동차가 멈춰 섰다. 그러나 생산은 하루아침에 멎지 않는다. 남는 석유가 쌓였고, 그것을 어딘가에 두어야 했다. 그런데 미국 원유 선물, 곧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계약은 추상적인 내기가 아니다. 만기가 되면 보유자는 오클라호마주 쿠싱에서 실물 1000배럴을 인수해야 한다. 송유관이 모이는 그곳의 저장 탱크는 당시 이미 거의 차 있었다.
4월 20일, 5월물 만기를 하루 앞두고 마지막 보유자들이 빠져나가려 했다. 맞은편에는 저장할 수 없는 인도를 떠안을 사람이 없었다. 가격은 오후에 0 아래로 내려가 마이너스 40.32달러까지 닿았고,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로 마감했다. 1983년 이 계약이 시작된 이래 처음이었다. 닷새 전 CME 청산소는 자사 시스템이 음의 가격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공지했다. 그것을 경고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음의 가격은 회계상의 착오가 아니다. 어떤 재화가 짐이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보관하고 옮기고 처분하는 비용이 그 재화의 값을 넘어선 것이다. 석유가 쓸모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날 잃은 것은 기다릴 자리였다.
놓아둘 자리가 없으면 가격도 없다
이 사건은 금융이 곧잘 잊는 것을 일깨운다. 계약 뒤에는 탱크가 있다. 저장 여유가 넉넉한 동안 선물 가격은 하나의 숫자처럼 움직이지만, 여유가 사라지면 물리적 제약이 다시 주도권을 쥔다. 석유는 이를 가장 거칠게 드러낸 첫 대형 상장 자산이었으나, 같은 논리가 전력에도 적용된다. 생산이 수요를 넘고 계통이 보낼 곳을 찾지 못할 때 전력 가격은 심심찮게 0 아래로 내려간다.
계약을 사면서 석유를 산다고 믿은 이들에게 수업료는 비쌌다. 중국에서는 이 5월물에 연동된 예금성 상품, 중국은행의 「위안유바오」 고객들이 100억 위안 안팎을 잃었고, 일부는 은행에 빚을 지게 되었다. 원자재 파생상품을 보유하는 것은 그 원자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만기에 그 제약을 물려받는 일이다.
물리 세계 바깥에 가치는 없다. 가진 것을 내려놓을 자리가 언제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