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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없이 산 운하

1875 무역과 세계화 읽기 4분

1875년 11월 25일, 영국은 카이로에서 수에즈 운하 주식 176,602주의 매입 계약에 서명했다. 의회는 휴회 중이었고 재무부는 한 푼도 내줄 수 없었다. 400만 파운드는 민간 은행에서, 말 한마디로 나왔다.

사실

급한 채무자와 급한 매수자

이스마일 총독은 빚으로 이집트를 근대화했다. 1875년 이집트의 부채는 1억 파운드에 이르렀고 12월 상환분은 감당할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일급 자산은 하나였다. 1869년에 개통한 수에즈 해양운하 만국회사의 주식 176,602주, 자본금의 44%에 가까운 몫이었다. 파리도 런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속도를 택했다. 의회는 휴회 중이어서 예산을 의결할 수 없었고, 재무부에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은행가 라이오넬 드 로스차일드가 공식 담보 없이 400만 파운드를 내주었다. 계약은 1875년 11월 25일 카이로에서 3,976,582파운드에 서명되었고, 주권은 이튿날 영국 영사관에 예치되었다. 하원이 이 지출을 승인한 것은 1876년 2월 21일에 이르러서였다. 글래드스턴은 이를 헌정 질서의 훼손으로 보았다.

가장 기이한 대목은 그 증권 자체에 있다. 이스마일은 이미 1894년까지의 배당 쿠폰을 넘긴 상태였다. 런던은 400만 파운드에 가까운 돈으로, 열아홉 해 동안 배당이 나오지 않는 주식을 산 셈이다. 그동안은 총독이 연 5%의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사 자격마저 잃은 그는 그 권리를 넘겨줄 수도 없었으니, 운하의 최대 주주는 처음에 이사회에 자리 하나 얻지 못했다.

1875년, 의회 없이 산 운하
그것이 드러내는 것

국가가 증권을 살 때 사는 것

평범한 투자자라면 이런 계약에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익도, 의결권도, 담보도 없었다. 런던이 산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인도로 가는 항로 위의 자리였다. 자산은 때로 그것이 낳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배하는 것을 위해 값이 매겨진다. 전략적 가치와 금융적 가치는 같은 크기가 아니며, 국가는 앞의 것을 얻기 위해 뒤의 것에서 손실을 감수하기도 한다.

이 사건의 다른 얼굴은 덜 영광스럽다. 궁지에 몰린 국가 채무자는 가장 나쁜 때, 곧 더는 지킬 수 없는 때에 최상의 자산을 판다. 그리고 그 매각은 그를 구하지 못한다. 1876년 이집트 공채관리위원회가 설치되고, 영불 공동 관리가 뒤따랐으며, 1882년의 점령으로 이어졌다. 항만과 해저 케이블과 해협의 소유를 둘러싼 오늘의 논쟁에서도 물음은 그대로 남는다. 교역의 길목을 누가 쥐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값에 넘어가는가?

전략적 자산은 언제나 가장 나쁜 때, 더는 지킬 수 없게 된 그때에 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