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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가 다시는 바뀌지 않은 동전

1780 화폐와 금속 읽기 4분

1780년 11월 29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화폐는 태어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의 초상을 새긴 탈러는 모두 같은 연도, 1780년을 달고 나왔다. 두 세기 반이 지난 지금도 그것은 주조된다.

사실

두 세기 반 동안 찍힌 동전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을 새긴 탈러는 1741년에 처음 주조되었고, 1751년 화폐 협약에 맞추어 순도가 고정되었다. 무게는 28.07그램, 그중 순은이 23.39그램으로 순도 833‰에 해당한다. 이 한결같음이 이 동전의 운을 만들었다. 깎이고 값이 낮춰진 화폐가 넘치던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쥐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군주가 죽자 빈은 기이한 결정을 내렸다. 다시는 연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홍해와 아라비아, 에티오피아의 상인들은 오직 그 초상과 그 연도만 받았고, 무엇이든 달라지면 의심을 샀을 것이다. 프란츠 요제프는 1857년 9월 19일 이를 공식 무역화폐로 삼았고, 1858년 10월 31일 오스트리아에서는 법정화폐 지위를 잃었다. 그럼에도 북아프리카에서 소말리아까지, 예멘에서 오만까지 유통되었다. 그곳에서는 이 동전을 「프랑스 리얄」이라는 뜻의 리얄 프란시라 불렀다. 파리에서 온 것이라 여긴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

1935년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로부터 25년간의 독점 주조권을 사들였다. 에티오피아 정복의 비용을 치르는 데 리라가 아니라 바로 이 동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런던과 파리, 브뤼셀도 곧바로 허가 없이 같은 동전을 찍기 시작했다. 1940년대 초 영국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동아프리카 전역의 자금을 대려고 봄베이에서 1800만 개가량을 만들어 냈다. 전쟁 중인 두 진영이 같은 연도를 새긴 같은 화폐를 찍고 있었던 셈이다. 이 독점권은 1961년에 끝났고, 영국은 1962년 2월 마지막으로 주조를 접었다.

1780년, 날짜가 다시는 바뀌지 않은 동전
그것이 드러내는 것

무엇이 화폐인지는 쓰는 이들이 정한다

1751년부터 2000년까지 약 3억 8900만 개의 탈러가 빈에서 봄베이까지 열두 곳 남짓한 조폐창에서 찍혔다. 이 화폐를 실제로 다스린 국가는 없었다. 오스트리아는 1858년에 이미 자국 체계에서 이를 걷어 냈고, 이 동전을 만든 제국은 1918년에 사라졌다. 그런데도 그것은 유통되었다. 세 대륙에 흩어진 사람들이 그것에 값이 있다고 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대체하려던 시도들이 그 점을 확인해 준다. 1890년 이탈리아의 에리트레아 탈레로, 이어 메넬리크 2세가 자기 초상으로 찍은 탈러는 이 동전을 흉내 냈을 뿐 끝내 밀어내지 못했다. 반면 이 동전은 사우디 리얄과 에티오피아 비르의 조상으로 인정된다. 교훈은 화폐학을 넘어선다. 화폐는 발행하는 쪽이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이들이 붙드는 것이다. 일부 경제의 달러화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화폐는 그것을 찍는 이의 것이 아니라,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받는 이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