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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녹슬게 만든 도시

1932 사상과 응용 읽기 4분

1932년 7월 31일, 티롤의 작은 도시가 자체 화폐를 유통시켰다. 매달 가치의 1퍼센트를 잃도록 설계된 돈이었다. 그 발상은 두 해 전에 세상을 떠난 한 이론가에게서 왔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이를 멈춰 세울 만큼 잘 작동했다.

사실

쥐고 있으면 값을 치러야 하는 지폐

인강 가에 자리한 인구 4,200명의 뵈르글은 그 무렵 절반의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멘트 공장과 셀룰로스 공장은 가동을 줄였고, 관할 구역의 실업자는 1,500명 남짓이었으며, 시는 세금을 걷지 못했다. 철도원 출신 시장 미하엘 운터구겐베르거는 실비오 게젤을 읽은 사람이었다. 「자유화폐」를 주창한 게젤은, 아무도 돈을 묶어 둘 이유가 없도록 돈도 상품처럼 낡아 가야 한다고 보았다. 1932년 7월 8일, 시의회는 그의 구제 계획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7월 31일, 시는 「노동증서」를 발행했다. 지역 은행에 예치한 실링으로 1대 1 담보를 잡은 화폐였다. 각 지폐는 월말마다 액면가의 1%에 해당하는 인지를 붙여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통용되지 않았다. 실링으로 되바꾸려면 2%를 물어야 했다. 시는 이 증서로 급여와 납품 대금을 치르고, 세금으로 다시 거두어들였다. 열세 달 동안 도로와 상수도, 다리 하나와 스키 점프대가 새로 지어졌다. 오스트리아 전체의 실업이 19% 늘어나는 사이, 뵈르글의 실업은 약 16% 줄었다.

원리는 한 문장으로 족하다. 월말의 마지막 날에 그 지폐를 쥐고 있으려는 사람은 없다. 뵈르글의 화폐는 멈춰 있음에 매기는 세금이었고, 예금이 아니라 지폐 자체에 적용된 마이너스 금리였다. 수천 실링이라는 소박한 금액이 그렇게 여러 번 값을 치렀다.

1932년, 돈을 녹슬게 만든 도시
그것이 드러내는 것

문제는 돈의 양이 아니라 돈의 움직임이다

뵈르글은 잊히기 쉬운 변수 하나를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화폐의 유통 속도다. 디플레이션에서 돈은 늘 모자란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편이 이롭기에 움직이기를 멈춘다. 저축이 아니라 보유에 비용을 물리면 그 셈법이 뒤집힌다. 이것은 결코 향토적 일화가 아니다. 2010년대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정책금리가 노린 바가 바로 그것이었고, 다만 그 대상이 가계의 지폐가 아니라 은행의 지급준비금이었을 뿐이다. 경제학자 어빙 피셔도 이 사례에 관심을 두고 1933년에 인지부착화폐를 다룬 소책자를 냈다.

다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실험은 작은 소도시에서 열세 달 동안 이어졌을 뿐이고, 유통 규모를 둘러싼 수치에는 이견이 있으며, 효과의 일부는 발행이 뒷받침한 공공지출에서 왔다. 그럼에도 핵심은 남는다.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은 발권 독점을 이유로 1933년 9월 1일 실험을 중단시켰고, 시가 제기한 소송은 그해 11월에 기각되었다. 한 줄로 적히는 화폐 규칙 하나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기에 충분했고, 바로 그 때문에 멈춰 세워진 것이다.

쥐고 있는 이에게 값을 물리는 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