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없이 지낸 나라
1970년 5월 1일, 아일랜드의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다시 열린 것은 11월 중순이었다. 여섯 달 반 동안 서유럽의 한 나라는 은행 제도 없이 임금을 주고 물건을 팔고 빚을 갚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결제되지 않은 수표 천만 장
임금을 둘러싼 분쟁이 협약은행들과 그 직원 노동조합을 갈라놓았고, 끝내 직장 폐쇄로 이어졌다. 1970년 5월 1일, 뱅크 오브 아일랜드, 얼라이드 아이리시 뱅크, 노던 뱅크, 얼스터 뱅크가 함께 문을 닫았다. 나라는 예금화폐의 대부분에 접근할 길을 한꺼번에 잃었다. 은행 간 결제가 멈췄고, 이미 유통되던 지폐는 계속 돌았으나 중앙은행에는 그것이 모자란 곳으로 지폐를 흘려보낼 통로가 없었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계속 서로에게 수표를 써 주었다. 제시할 창구가 없으니 그 수표는 더 이상 결제되지 않았다. 수표는 단순한 차용증처럼 손에서 손으로 건너갔고, 받는 사람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재개 시점까지 위험을 떠안았다. 분쟁 기간에 약 천만 장의 수표가, 합계 30억 파운드가 넘는 값으로, 한 번도 결제되지 않은 채 손을 바꾸었다.
누가 수표를 받을지 말지 판단했는가? 상인, 그리고 무엇보다 선술집 주인이었다. 잉글랜드은행 문서고에는 더블린 근교 발브리건의 한 주인이 남긴 말이 있다. 수천 파운드어치 수표를 들고 있으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단골하고만 거래하고 낯선 사람은 돌려보내기 때문이라고. 그에게는 재무제표가 없는 대신 어느 은행에도 없는 정보가 있었다. 그는 채무자들을 날마다 보고 있었다.
은행이 실제로 생산하는 것
이 사건은 흔히 행복한 우화로 이야기된다. 경제는 은행 없이도 돌아간다는 증거로. 실제로 경제학자 안톤 머피가 1978년에 낸 연구는 소매 판매에 이렇다 할 악영향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림은 더 복잡하다. 아일랜드 중앙은행의 1971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 열 곳 중 여섯 곳이 대체 결제 수단을 임시로 꾸리느라 인력을 돌려야 했고, 같은 해의 공식 조사 보고서는 신랄했다.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쪽은 해외에 거래 상대가 없던 수입업자와 수출업자였다. 잉글랜드은행 문서고에는 건별로 마련된 긴급 조치들이 남아 있다.
여기에 교훈이 있다. 은행은 돈을 만들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은행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공급한다. 거래 상대의 위험을 평가하는 일과, 지급을 최종적으로 끝내는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아는 나라에서 앞의 것은 선술집 주인이 대신할 수 있다. 뒤의 것은 그럴 수 없다. 아무것도 청산되지 않은 채 빚만 쌓이고, 그 구조는 국경에서 뚝 끊기는 신뢰에 기대어 겨우 버틴다. 예금화폐는 곧 신용이며, 은행이 거기에 더하는 것은 정보와 하나의 마침표다.
은행은 신뢰를 만들지 않는다. 신뢰가 생겨날 수 없는 곳에서 그것을 대신할 뿐이다.